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디엔비엔푸 전투 (문단 편집) == 기타 == [[파일:dien-b10.jpg]] [[파일:DBP24.jpg]] [[파일:DBP25.jpg]] * 1992년 피에르 쇤도르페르 감독(Pierre Schoendoerffer,1928~2012)이 [[도널드 플레젠스]] 주연으로 만든 [[영화]] '''[[https://www.imdb.com/title/tt0104105/|디엔비엔푸(Diên Biên Phú ,1992)]]'''가 있다. 프랑스와 베트남의 합작으로 프랑스 감독과 배우들이 베트남 올로케이션으로 만들었다. 프랑스군의 시각에서 디엔비엔푸의 몰락을 보여주는데 '용감하게 싸운 프랑스 만세!'가 아니고 절망적인 상황에서 어떻게든 버텨 보려고 안간힘을 쓰는 병사들의 허망한 모습과 그 안에서 벌어지는 갈등[* 대표적으로 베트남계 장교의 말을 대놓고 무시하는 백인 사병들의 모습.]을 현실적으로 그리고 있다. 참고로 쇤도르페르 감독은 젊은 시절 프랑스군 [[사진병]]으로 이 전투에 종군하였다가 포로가 된 후 풀려난 경력이 있다. 자신이 두 눈으로 직접 겪은 일이다 보니 리얼리티가 높을 수 밖에 없다. 그러니 빵빵쏘고 부수는 액션을 기대했다면 접어두자. 50년대 프랑스군의 장비와 복식을 제대로 고증한 [[수작]]으로 [[고증덕후]]들은 눈이 즐겁다. [[파일:600px-Lostcmd07.jpg]] [[파일:600px-Lostcmd16 (1).jpg]] * 프랑스 공수부대[* 외인부대가 아니고 정규군 공수부대다. 알제리계 장교가 있어서 외인부대 아닌가 오해할 수 있는데 작중에는 정규군으로 나온다.]가 주인공으로 나오는 영화 '[[https://www.imdb.com/title/tt0060637/|로스트 커맨드(1965)]]'에서도 초반 배경으로 등장한다. 한국에서는 과거에 영화 주인공 이름인 '라스피기'로 개봉하기도 했다. 잠깐이긴 해도 디엔비엔푸 전투의 양상과 처절함을 상당히 살린 편으로, 증원군으로 투입된 프랑스 공수부대원들이 전부 베트민군 장악지역으로 떨어져 그대로 몰살당하는 장면도 나온다. 또한 영화의 주 배경인 알제리 독립 전쟁이 디엔비엔푸 전투에서 프랑스가 패배하는 사건에서 용기를 얻은 알제리 인들에 의해 더욱 가속된 것으로 나온다. [[파일:external/www.vinahanin.com/fc903df9e1babfddcf046a24b5eb6fe9.jpg]] * 베트남에서 제작된 FPS "[[7554(게임)]]"에는 게임 타이틀 자체가 디엔비엔푸 전투가 끝난 1954년 5월 7일에서 따 온 만큼 이 전투가 마지막 미션으로 등장한다.[* 5457 아닌가 하며 조금 헷갈리는 사람은 일/월/년 순으로 생각하면 쉽다.] 미션 제목의 영문명이 "Global Impact(국제적인 충격)". [[파일:galard.png]] * 프랑스 공군 소속의 여자 간호사 [[https://en.wikipedia.org/wiki/Genevi%C3%A8ve_de_Galard|주느비에브 드 갈라르(Geneviève de Galard)]]는 이런 지옥 같은 현장에서 환자들을 치료하는 살신성인의 모습으로 '디엔비엔푸의 천사'로 불리며 모든 프랑스군인들의 존경을 받았다.[* 원래 환자 이송을 위해 수송기를 타고 왔다가 비행기가 포격으로 부서지는 바람에 남게 되었다. 하지만 그녀 역시 '떠날 수 있더라도 떠나지 않겠다'며 자원의사를 밝혔다.] 군인들의 배려로 개인 벙커를 사용할수 있었다고 하며 그녀의 헌신에 감동한 지휘부는 무전으로 상부에 [[레지옹 도뇌르]] 훈장을 신청하여 그녀에게 수여하였다. 디엔비엔푸 전투가 베트남의 승전으로 끝난 후 베트남에서도 그녀의 지위와 기개를 인정하였고 결국 살아남아 고국 땅을 밟았다. * 디엔비엔푸 전투의 상세한 전개 과정을 알아보려면 해당 블로그글을 읽어 봐도 좋다. [[https://blog.naver.com/rectek2/15360808|#1]],[[http://blog.naver.com/PostView.nhn?blogId=rectek2&logNo=15381225|#2]], [[http://blog.naver.com/PostView.nhn?blogId=rectek2&logNo=15389097|#3]] * 디엔비엔푸 전투 현장 여행기는 해당 블로그 글을 읽어봐도 좋다. [[https://blog.naver.com/willow458/221421416544|#1]] [[https://blog.naver.com/willow458/221426732345|#]] [[https://blog.naver.com/willow458/221446941306|#3]] [[https://blog.naver.com/willow458/221448697631|#4]] * 디엔비엔푸 전투 현장 관련 또 다른 여행기는 해당 블로그 글을 읽어봐도 좋다. [[https://blog.naver.com/spk1008/100165818084|#1]] [[https://blog.naver.com/spk1008/100179959594|#2]] [[https://blog.naver.com/spk1008/100180002903|#3]] [[https://blog.naver.com/spk1008/100180121632|#4]] [[https://blog.naver.com/spk1008/100180129193|#5]] [[https://blog.naver.com/spk1008/100180351450|#6]] [[https://blog.naver.com/spk1008/100180367324|#7]] [[https://blog.naver.com/spk1008/100180373545|#8]] * 2019년 12월 길찾기 출판사에서 [[보응우옌잡]] 장군이 집필한 책 두권을 번역하여 디엔비엔푸라는 이름으로 책을 출간했다.[[https://book.naver.com/bookdb/review.nhn?bid=15971442|디엔비엔푸]] 전투를 지휘했던 당사자의 입장과 생각을 알 수 있다는 점과 대한민국에 최초로 출간된 디엔비엔푸 전투 관련 서적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 프랑스군은 [[전투식량]]처럼 만든 휴대용 [[포도주]]인 [[비노젤]]을 마셨다. 이는 부족한 보급에서 식수 문제를 해결하고 병사들의 사기를 높였다. 이와 관련되어 공수보급된 비노젤이 적진에 떨어지는 일이 있었는데 이때 열받은 프랑스군이 적진에 떨어진 비노젤을 탈환할 결사대를 모집하자 너도 나도 지원했다는 일화가 있다. * 당시 미국 정부는 한국의 이승만 정부가 전투 개시 2개월 전인 1954년 1월에 자청한 한국군 전투사단의 파병도 재검토했다. 이승만 정부가 내세웠던 파병 명분은 한국전쟁에서 유엔군으로써 도와줬던 프랑스에 대한 보답과 동남아시아에서의 반공정신 고취 및 강화였다. 즉 이승만 정권은 자신의 주도아래 제1차 인도차이나 전쟁에 병력을 파견하면 반공투쟁을 강화하고 동시에 앞으로 미국과의 군비 강화 협상에서 유리한 위치를 확보하려는 의도가 있었다. 하지만 미국은 이런 이승만 정부의 파병 제안을 내부 의논 끝에 정중히 거부했다. 박태균 교수에 따르면, 당시 이승만 정부는 파병의 전제조건으로 미국에게 한국군 20개 사단을 35개 사단으로 증강해 달라고 요청했다. * 그런데 놀랍게도 '''프랑스군으로 참전한 한국인이 몇 명 있다.''' 인도차이나 전쟁에 참가한 프랑스군 부대들은 6.25 전쟁에 파병되었다가 바로 이동하여 전투에 참가했는데 당시 프랑스군 부대에는 한국인 노무자와 [[카투사]]와 유사하게 프랑스군 부대에서 복무한 한국군 병사들이 있었다고 한다. 이들 중 일부가 현지 입대 방식으로 프랑스군 외인부대에 입대하거나 부대를 따라 인도차이나로 갔으며 대략 3명 정도가 디엔비엔푸 전투에서 포로가 되었다가 1명이 풀려났다는 이야기가 있다. 당시 함경북도 함주 출신이었던 전병일 씨는 [[6.25 전쟁]] 때 월남해 프랑스군에서 업무를 도왔다. 그러나 휴전 협정 이후 고향으로 돌아갈 수 없게 된 전 씨는 프랑스군을 따라갔다가 입대했다. 이때 월맹을 진압하는 디엔비엔푸 전투에 투입됐고, 이후에는 알제리 독립 전쟁에도 참여했다. 그 후 '북한인'이면서 '남한인'으로서 프랑스에 살고 있다. (출처: [[https://www.joongang.co.kr/article/3109676#home|전진배 〈 “한국 땅에서 눈 감을 수만 있다면…”〉, 《중앙일보》 2008. 4. 14.]]) *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지만 비밀리에 참전한 미군 중에 2명이 전사했다. 그 중 한 명은 2004년 CIA가 비밀 해제한 정보에 따르면 맥거번 2세로 태평양 전쟁에 참전했으며, 이후 민간 조종사로 CIA에 고용된 인물이다. [[https://www.vietnamwar50th.com/1945-1964_the_road_to_war/Two-American-CAT-Pilots-Die-at-Dien-Bien-Phu/|관련자료]] [[https://en.wikipedia.org/wiki/James_B._McGovern_Jr.|제임스 맥거번 2세]] * 본문에도 언급된 전투가 벌어진 주요 거점들에는 여성의 이름들이 붙었는데 이를 두고 지휘관인 카스트리의 '''내연녀'''들의 이름이란 풍문이 있으나 증거는 없다. [[분류:1954년 전투]][[분류:프랑스-베트남 관계]][[분류:인도차이나 전쟁]]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